Skip to content

Latest commit

 

History

History
6 lines (2 loc) · 3.13 KB

1.md

File metadata and controls

6 lines (2 loc) · 3.13 KB

시작

이 글을 읽어나갈 여러분께 감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필자의 의도나 생각을 완벽히 간파하고 이해하기 보다 각자가 제멋대로 오해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의도나 생각이 원숙하지도 못하거니와 명백한 목적이 계산되어 있더라도 왜곡없이 전달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저는 세상이 타당한 법칙과 잘 짜여진 체계로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세상은 오히려 예측이 불가하며, 가끔은 비합리적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상식들부터 전문가들의 관찰과 분석으로 이룩된 학문들, 과학적 사실들까지도 어쩌면 현재까지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특정집단의 관심의 차이들이 세상을 제각각 오색찬란하게 밝히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실들이 오해에 불과할 뿐이라며 단정짓고 한계를 긋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오히려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거창한 포부이기도 합니다. 일원화된 이해의 내벽을 허물어 그 틈을 비집고 새어나가는 오해 덕분에 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니까요. 이해는 잘 정리되어 깔끔합니다. 오해는 불가해하며 복잡합니다. 이해는 여러사람들의 관점에 대해 객관적인 유사성이 우선되지만, 오해는 각자의 관점에 대해 주관적인 통일성이 우선됩니다. 예술작품을 예로 들면, 작품을 감상할 때 객관화되고 규준화된 방식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면 즐거움은 반감할 것입니다. 분명 그러한 방식 역시 유의미하겠지만 예술작품이라는 대상과 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자의 유일무이한 주름이 맛닿는 접점에서 고유한 가치와 즐거움은 탄생합니다. 같은 작품에 대해 모두가 동일한 감상과 표현을 하는 것 만큼 지루하고 시간 낭비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객관이라는 추상에만 매몰된다면 세상은 오색빛을 잃고 잿빛으로 물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예술 작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진리라 해도 좋을 만한 것까지도 결국은 자신 혹은 타인에게 확인되어야 할 정당성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이 글이 여느 예술작품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세계에서 먼저 읽혀질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래봅니다. 명료한 이론에 점유되지 않는 빈 공간을 남겨두며 그 안을 자유롭게 누벼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쉽게 해명되지는 않더라도 자꾸만 자신만의 언어를 호출하게 만드는 시나 소설처럼 읽혀졌으면 기쁘겠습니다. 자명한 해답이나 탁월한 정보를 제공하지도 못하는 한낱 소견에 불과한 이 글들이 여러 색깔들로 다채롭게 그려지는 그림처럼 여러분께 오해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